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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철학자습] 아우구스티누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사진 출처 : 위키백과

아우구스티누스는 5세기 전후 북아프리카 알제리와 이탈리에서 신학자이다. 기독교 성인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며 현재까지도 기독교, 가톨릭 등 서방 종교계에서 존경받는 인물인 그는 기원후 354년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타가스테는 오늘날 알제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당시 북 아프리카는 현재의 아프리카와는 사뭇 달랐다. 로마 제국과 더불어 문화의 중심지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부모의 종교가 서로 다른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교도였고 어머니는 그리스도교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그리스도교를 믿길 원했지만 철학에만 심취해 있던 아들은 철학처럼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교리를 가졌다고 느낀 마니교에 심취해 10년 신앙생활을 했다. 하지만 마니교 지도자의 지적 수준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신플라톤주의'에 물든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은 플로티누스에 의해 확립된 철학으로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 세계로 양분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서 나아가 세계가 4단계로 구분되어 있다는 일자론으로 확장시킨 사상이다. 신플라톤주의에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밀라노 주교인 성 암브로시우스와의 만남을 계기로 386년 여름, 서른둘에 성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귀의한다. 그 이듬해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수도회를 설립해 수도사 생활에 전념한다.

 

아우구스티누는 플로티누스의 사상을 수용하며 일자론의 일자(The one)를 신(God)으로 바꿔 '신플라톤주의'를 기독교 사상으로 전환해 자신만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신이 이 세계를 창조했으며 신에게 가까워질수록 선에 근접하고 물질 쪽으로 떨어질수록 악에 가까워지며 신과의 합일이 바로 구원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과의 합일을 이룰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론을 주장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물려받은 피조물이며 오직 신의 은총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 은총론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발 더 나아가 부모의 성행위를 통해 죄가 자식에게 되물림된다고 주장한다. 성적 욕망의 충족으로서의 성행위를 부정하고 오로지 종족번식만을 위한 필요악으로 본 철저히 금욕주의적이고 기독교적인 시각이다. 강한 은총론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주의'를 반대했다. '펠라기우스주의'는 동시대를 살았던 수도사 펠라기우스의 사상으로, 그는 아담과 하와의 죄는 그들의 죄일 뿐 모든 인간의 죄는 아니라며 사실상 연좌제를 반대했다. 죄는 개인의 죄일 뿐이어서 인간은 자유의지와 금욕적 생활을 통해서 얼마든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게 펠라기우스의 입장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펠라기우스주의를 반대했던 건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할 때 필연적으로 줄어드는 신의 영향력을 염려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신이 전지전능하려면 신의 피조물인 인간은 무지무능해야 하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 의존적 성향은 진실이나 진리를 대하는 그의 자세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인간은 진실이나 진리를 알 수 없다는 입장이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을 인지해서 신을 믿는 게 아니라 신을 믿어야 신을 알 수 있다는 것. 만물의 근원과 세계의 진리를 향한 합리적 사유를 철학으로 볼 때 그의 사상이 철학보다는 신학에 가까운 것도 믿어야 알 수 있다는 그의 신념 때문인 듯하다.

 

인간의 능력, 공로보다는 하느님의 권능과 은총을 강조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은총론, 신학적 인식론, 교회론, 영성신학 등 많은 분야에 영향을 미쳤으며, 무려 천 년이 지난 16세기 종교 개혁 시기의 개신교 선구자인 루터, 올리히 츠빙글리, 장 칼뱅 물론 근대의 얀센주의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아우구스티누수는 그렇게 인간인 자신을 작고 겸손하게 여기며 여생을 수도원에 바쳤다. 마흔 중반에 수도회의 주교가 되었으며 430년 8월 28일, 반달족의 침략으로 수도원으로 피난온 피난민들을 성심으로 돌보다 역병에 걸려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사후에 자신이 믿었던 신을 만났을까. 그리고 신에게 구원받았을까. 그의 말대로 신을 믿지 않는 나는 영영 모를 일이지만 삼십대 초반에 기독교에 귀의해 남은 여생을 신을 섬기며 가혹하리만치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어려운 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성 아우구스티누스 삶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이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