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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철학자습] 서양철학의 아버지 탈레스

탈레스 출처 : 유튜브 5분뚝딱철학 캡쳐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그래도 인류의 역사에는 굵직굵직한 혁명적 발견과 발명들이 있었다. 천문학의 이해를 통째로 바꾼 지동설부터 바퀴나 문자의 발명, 만유인력의 법칙, 기체와 증기기관 발명 그리고 페니실린의 발견 등등 각 분야를 막론하고 '최초'라는 타이틀을 걸 수 있는 발견 발명 들이 있었다. 그리고 철학에도 '최초'가 있다. 철학을 자연현상이나 사물을 향한 합리적 접근이라고 정의할 때, 최초의 서양철학은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 국가의 해안 도시인 밀레토스에서 출현했다.

 

당시 세계에는 그리스 문명 말고도 상당히 발달한 문명들이 많았는데 서양철학은 왜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가지 않는 한 정확한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추론은 가능하다. 에게해를 끼고 있는 그리스는 다른 지방에 비해 상당히 자유분방한 곳이었다. 해상 무역을 통해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인 그리스 사람들은 하나의 전통이나 문화,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았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아주 부유했으며 노에를 두고 있었기에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자유롭고 창의적인 공상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그리스 사람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세계를 하나의 통일체로써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성향이 강했다고 한다. 당시 이집트에도 수학과 기하학이 발달되어 있었지만 이집트 사람들은 그것을 계산을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한 반면 그리스인들은 수학과 과학을 변하지 않는 세상의 진리와 관념들을 추상화하는 데 사용했다. 아마도 이러한 그리스인들의 역사 문화적 배경과 기질 덕분에 서양철학이 처음으로 꽃 피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정확히 그리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기에 철학이 시작되었는 걸까. 고대인들은 자연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폭우가 내려 강이 범람하는 이유, 가뭄이 드는 이유, 폭풍이나 폭설이 닥치는 이유 등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현상을 초자연의 범주에 두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현상을 그들이 믿던 신앙과 결부시켜 건강과 풍작은 신의 은총으로, 질병과 자연재해 등은 신의 처벌로 여겼다. 그러니까 고대인들은 신화의 영역, 미토스(Mythos)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연현상을 순수한 이성의 힘, 로고스(logos)로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그리스에서 일어난 것이다. 미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이행, 이것이 철학의 시작이다.

 

미토스에서 로고스로의 최초의 이행의 주인공은 주인공은 서양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탈레스이다. 철학뿐만이 아니라 탈레스는 최초의 수학자, 최초의 고대 그리스 7대 현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탈레스는 지금의 터키 지방인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밀레토스 도시에서 태어났다. 여러 분야에 학식이 넓었으며 이집트 여행을 계기로 수학과 천문학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이때 배운 천문학으로 기원전 585년에 일어날 일식을 예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류 최초의 일식 예언이었다. 그가 이집트를 여행할 때, 여름에 비가 오지 않음에도 나일강 하류가 범람하는 현상을 보았다. 매년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이 현상을 두고 나일강 원주민들은 강의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미토스의 세계관이었다. 그러나 탈레스는 그 현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강물의 범람을 북쪽에서 불어오는 계절풍 탓으로 보았다. 강물 흐름의 반대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와 강물이 흐르지 못하고 넘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해석은 실제 원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일강의 상류에 쏟아진 집중호우 때문에 하류가 범람한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레스적 접근이 가치를 가지는 건, 강물의 범람이라는 자연현상을 미토스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로고스로 이해하려 했다는 것이다. 자연현상을 또 다른 자연현상으로 설명하는 것,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다. 탈레스를 최초의 철학자이자 최초의 과학자라고 하는 이유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인류 최초의 환원론이다. 환원론은 거대하고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자연이나 사물도 근본적으로는 가장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이다. 우주는 신들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되고 있다는 미토스적 믿음이 팽배하던 시대에 탈레스의 사유는 완전히 새로운, 가히 혁명적인 통찰이었다. 어떤 장르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탈레스가 한 일이 그와 같다. 기존에 아예 없던 생각,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를 백팔십 도 뒤집은 것이다. 세계를 바라보는 탈레스의 새로운 시선은 후대로 이어져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불이다.",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은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으며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근현대까지 이어져 양자학까지 연결된다. 예의 이론들 중에서 가장 혁명적인 사고는 탈레스의 환원론이었다. 정답에서는 가장 거리가 멀지라도 그의 주장이 세계를 로고스적으로 접근한 최초의 환원론이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과학자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 우주의 물질을 연구한다. 인류는 아직도 탈레스가 품었던 의문 "세상은 뭘로 이루어져 있을까."를 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밤 탈레스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걷다가 우물에 바진 일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녀가 탈레스에게 말했다. "먼 하늘의 이치를 알려고 하면서 바로 앞의 우물은 못 보시네요." 하지만 그 먼 옛날에 누구보다 멀리 본 탈레스가 있었기에 우리는 우주의 진실에 아주 조금이라도 가까이 와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