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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철학자습]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디오게네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디오게네스(가운데)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시작된 서양 철학은 소크라테스를 거쳐 플라톤을 지나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며 발전했다. 이 시기 철학자들의 관심사는 주로 국가 유지를 위해 시민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나 지켜야 할 도덕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철학은 다분히 교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법. 대중들은 늘 같은 소리만 하는 철학자들의 말에 염증을 느꼈을 것이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줄어들기 마련. 사람들은 유의미한 전체의 무의미한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고, 철학의 흐름도 그쪽으로 변화했다. 이런 흐름에서 새로 등장한 사상이 회의주의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학파 그리고 견유학파였다. 회의주의 학파는 인간이 세계의 근원이나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가능성을 회의했고, 에피쿠로스 학파는 무소유적 행복과 평온을 삶의 가치로 삼았다. 스토아학파는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고 금욕적인 태도를 지향했으며, 견유학파는 무위자연의 삶을 추구했다. 견유학파의 사조가 바로 디오게네스이다.

 

디오게네스는 흑해 연안 도시인 시노페에서 태어났다. 디오게네스의 아버지는 환전상이었는데, 돈을 자주 만지다 탐욕에 눈이 멀었는지 위조에 손을 댔다. 위조 행각은 곧 발각되어 일가족은 시노페에서 추방당한다. 시노페에서 쫓겨난 디오게네스는 그 길로 아테로 가는데, 그곳에서 플라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다. 안티스테네스는 제자들에게 선이나 덕과 같은 가치를 강조했고, 선한 마음만 있으면 옳은 삶을 이룰 수 있으며, 재산이나 명성 외모 따위는 인생에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다. 흙수저 금수저론이 난무하고 매스미디에서 8등신 미인들이 도배될 만큼 그 어느 때보나 물질과 외모가 중시되는 요즘을 생각하면 2500여 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음이 놀랍다. 한편으로는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물질과 외형에 집착하는 인간이 참 한결같다는 생각도 든다. 디오게네스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스승은 선과 덕을 중시하였지만 그 선과 덕은 기존 질서 유지를 위함이었다. 디오게네스는 타인을 의식하는 도덕을 지양하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욕구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욕구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혐오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러운 작용으로 보았으며, 욕구의 쉬운 충족이 '행복'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실제로 한평생을 그의 신념대로 살았다. 그의 신념이 얼마나 강했냐면, 사람들로 가득한 광장 한복판에서 자위를 할 정도였다. 자위를 끝내고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배고픔도 이처럼 문질러서 해결된다면 좋을 것을!"

 

디오게네스에게 전 생애를 꿰뚫는 통찰을 준 것은 개였다. 뭔가를 주는 자에게 꼬리를 치며 반기고, 아무것도 주지 않은 자에게는 시끄럽게 짖어대고, 해코지를 하는 자는 물어버리는 개의 모습에서 디오네게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답을 보았나 보다. 호의에는 호의로 답하고, 악의는 악의로 갚는 솔직 단순한 견생에 반했을까, 디오게네스는 그날로 스스로를 견유학파의 어원이 된 '개'로 명명하고 개처럼 살았다. 가죽이 가진 전부인 개처럼 그도 옷 한 벌이 전부였고 평생을 커다란 통 속에서 지냈으니, 인도의 수도승 사두를 떠올리는 삶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유일한 재산목록은 물을 떠먹기 위한 표주박이었는데, 어느 날 한 마리 개가 혓바닥으로 물을 떠먹는 모습을 보고 그마저도 버렸다고 한다. 견생을 표방한 디오게네스의 기행은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까지 알려졌다. 개처럼 사는 인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를 찾아가 말했다.

"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네."

디오게네스도 그가 높은 사람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화려한 군장에 호위병들을 대동했을 터이니. 하지만 디오게네스에게는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든 그저 자신과 다르지 않은 하나의 인간일 뿐이었다. 그래서 디오게네스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디오게네스, 개라네."

자신과 비교되는 초라한 행색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당돌하게 대답하는 그에게 기가 차 알렉산드로스가 다시 물었다.

"내가 무섭지 않은가?"

알렉산드로스의 물음에 디오게네스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대는 선한 자인가?"

만약 알렉산드로스가 선한 자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가 악한 자라면 무방비한 디오게네스는 그저 무력할 것이니 그가 선하든 악하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대는 선한 자인가?"라는 담담한 질문에 죽음마저 초월한 기상이 서려 있었던 것이다. 그 기상에 반해 알렉산드로스는 선뜻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던 게 아닐까. 대왕의 제안에 디오게네스는 앉은 그대로 대왕을 게슴츠레 올려보며 말했다.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주게."

대왕의 호위병들은 무례한 디오게네스를 즉결심판하려 했다. 대왕은 호위병들을 말리며 이렇게 푸념했다.

"내가 만약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나도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구나."

이 말을 들은 디오게네스의 촌철살인.

"만일 내가 디오게네스가 아니라면, 나도 디오게네스처럼 되고 싶겠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일화에서 엿볼 수 있듯이 디오게네스는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았다. 이는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매우 급진적인 사고였다. 그때는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졌으며, 노예제가 정식으로 시행됐으며, 여자는 같은 인간이 아닌 재산으로 취급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오게네스는 어떤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보이지 만물에는 만물이 들어 있다고 했다. 만물은 만물을 품고 있으므로 만물은 그 자체로 평등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 등이 끊이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디오게네스의 사상이 얼마나 위험하고 급진적이었을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디오게네스는 2500년을 앞서간 선구자였던 것이다. 누군가 "어디서 왔나요?"하고 물어볼 때마다 디오게네스가 "나는 세계의 시민이오."라고 답한 건 이러한 사상적 배경 때문이었다. '세계의 시민'을 영어로 옮기며 '코스모폴리탄'이다. 디오게네스는 스스로를 '코스모스(우주)'에서 왔다고 했다. 한 나라도 아니고, 지구도 아니고, 우주를 품은 디오게네스에게는 출신이나 인종의 구별은 무의미했던 것. "나는 우주에서 왔다."는 디오게네스의 대답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시민 사상,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시원이다.

 

디오게네스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삶으로 오롯이 보여준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삶을 하나의 전위예술로, 그를 행위예술가로 보는 평가는 조금도 부당하지 않다. 그의 철학이 워낙 독특하고 급진적이었기에 항상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괘념치 않고 평생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꺾지 않고 '개'처럼 산 디오게네스는, 고독했을망정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살았고 그래서 자유롭고 행복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