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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리뷰] 약속의 네버랜드 에피스드 1 리뷰

[약속의 네버랜드] 출처 : 나무위키

약속의 네버랜드 1회는 창살에서 시작한다. 창살의 저쪽에 아이가 있고 그 너머에세 푸르른 자연이 있다. 잠시 후 화면이 반전되며 창살 이쪽이 비친다. 그 세계는 창살 저쪽의 세계와 완전히 대비되는 어둡고 퀴퀴한, 감옥처럼 보이는 건물의 내부다. 창살을 경계로 구속과 자유가 나뉜다. 아이들은 자유의 세계의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바로 뒤이어 나오는 아이들의 대화로 현실은 그 반대임을 알 수 있다. 감옥으로 보이는 건물의 내부는 외부로 통하는 문이었으며 아이들은 창살 저쪽에서 태어나 한 번도 문을 나간 적이 없다는 것을. 거기엔 '엄마'라고 불리는 인물의 당부가 있었다. "문과 울타리는 위험하다" 금지의 명령이다. 그러나 세 아이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금기를 욕망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 까닭이다. 노먼의 혼잣말이 인상 깊다. "이건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걸까?" 어른도 다르지 않지만 특히 아이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크고 작은 규율과 규칙들에 구속되어 성장한다. 할 수 없는 것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압도한다. 이에 대해 어른들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 많은 규율과 규칙 모두가 순전히 아이의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일가. 최소한 열에 서너 개는 어른들 자신의 편리를 위함이 아닐까.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노먼의 질문에 담긴 함의는 짧지 않다.

 

첫번째 시퀀스에서는 고아원의 행복하고 평온한 아침이 나온다. 아이들은 사이가 좋고 엄마는 아이들에게 한없이 상냥하다. 풍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이다. 그렇다고 힘듦이 없는 건 아니다. 이 아이들에게도 시험이 있다. 그런데 문제풀이 방식이 독특하다. 시험지가 보여지는 스크린 위에 연필로 구분이 되지 않는 바코드를 그려 정답을 적는다. 이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마치 공장에서 상품을 찍어내듯이 아이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공교육을 비판하는 걸까? 어쨌든 공장식 교육에도 등급은 매겨진다. 탁원한 두뇌를 가진 챈재 노먼, 노먼과 맞먹는 지력을 가진 레이, 뛰어난 운동 신경과 학습능력으로 두 사람을 따라잡는 엠마가 만점을 받는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실력자가 셋이나 되는 건 하우스(고아원) 사상 처음이라는 설명은 지금껏 하우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발생하리라는 복선이 된다. 그것은 아마도 하우스 탈출. 세 천재에 의한 탈출 과정이 어떻게 묘사될지 궁금증 야기한다.

 

셋에 비해 머리는 딸리지만 관심은 받고 싶은 돈은 몸을 쓰는 승부는 자신 있다는 듯 노먼에게 술래잡기를 신청한다. 하지만 몸의 영역도 두뇌가 하는 일이라는 듯 노먼은 지략을 이용해 쉽게 술래들을 잡는다. 술래잡기에서 엠마의 뛰어난 신체능력과 노먼의 상대의 약점을 간파하는 능력과 그 허점을 잘 공략하는 노먼의 지력, 그리고 상황을 종합하고 분석하는 레이의 분석력이 잘 드러난다. 이로써 세 주인공이 하우스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맡게 된 역할을 맛보기로 보여준다. 한편 돈은 완벽한 패배에도 승복하지 못하고 노먼 혼자 숨고 모두가 술래가 되는 게임을 하자고 억지를 부린다. 단순무식하고 다혈질적인 돈이다. 두번째 게임에서 엠마는 무언가에 홀린 듯 울타리에 다가간다. 그곳에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홀린 듯 서 있는 노먼을 보고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려 술래를 잡는다. 그런데 울타리 앞에선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 마치 이 울타리를 넘는 게 자신들의 최대 과제임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는 듯이.

 

울타리 앞에서 노먼과 엠마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문이랑 울타리 쪽은 위험하다." 하지만 위험하다기에 울타리는 너무 엉성하고 낮다. 마치 넘기를 바라는 듯한 울타리는 무언가를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위반에 의해 권위가 유지되는 법과 질서를 닮았다. 사실 법을 어기기란 저 낮은 울타리를 넘는 일처럼 얼마나 쉬운가.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의 권위와 그걸 어길 시에 겪게 되는 사회적 죽음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 때문에 낮은 울타리를 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에 말하는 쾌락원칙이다. 하우스에서 엄마는 곧 법이다. 엄마를 잘 따르는 노먼과 엠마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이 저 울타리를 넘는 건 열두 살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열두 살이 되면 '합법적'으로 고아원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울타리를 넘는 게 아니다. 하나의 금지에 다른 금지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에 쓸모 있는 존재로 길러진다.

 

울타리 앞에 모인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하우스의 수상한 점이 드러난다. 어째서 고아원에서 태어나 친형제처럼 함께 자란 아이들이 퇴소 후 사회에 나가 한 통의 편지조차 하지 않는 걸까.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텐데도 아이들은 그마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퇴소 후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한다. 엠마는 지금도 행복해서 평생 하우스에서 살고 싶다고 한다. 엠마는 지금의 행복에 아무런 의심이 없다. 하지만 하루하루 친구들과 재밌게 지내고 기본적인 교육도 받으며 매 끼니도 잘 챙겨먹지만, 드넓은 야생으로부터 격리된 채 작은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처럼, 혹은 축사의 가축들처럼 고아원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힌 삶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레이는 해맑게 평생 하우스에서 살고 싶다는 엠마를 보며 행복의 의미를 곱씹는다. 그날 저녁 고아원을 나가는 어린 코니는 여기 가족들을 잊지 않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주겠다고 한다. 하우스를 나가서 엄마처럼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아이를 버리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그곳에 있던 아이들 중 누가 알았을까. 코니의 환한 다짐이 마지막 유언이 될 것임을.

 

입양되어 퇴소하는 코니는 아이들에게 눈물의 이별을 하고 문으로 향하고, 식당을 청소하던 엠마는 코니가 두고 간 인형을 발견한다. 엠마와 노먼은 엄마에게 혼날 것을 알면서도 코니의 인형을 들고 문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 주차된 트럭의 짐칸에서 코니의 차가운 시신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노먼과 엠마의 기척에 철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기 누구 있어?", "말소리가 들렸는데..."라며 나누는 대화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간의 언어이자 음성이다. 그러나 트럭 밑에 몸을 순긴 노먼과 엠마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정체는 거칠고 흉칙한 피부에 세로로 박힌 눈, 가늘고 긴 손가락에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괴물. 두 괴물이 코니의 사체를 유리 캡슐에 넣으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 노먼과 엠마는 고아원이 괴물들에게 양질의 인육을 바치기 위한 농원이었으며, 고아원을 떠난 아이들은 바깥 세상으로 나간 것이 아니라 괴물들의 배속으로 들어갔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된다. 노먼과 엠마가 무엇보다 인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토록 믿고 사랑했던 자상한 엄마는 인육 유통을 위한 중간책이었단 것이었다.

 

인육을 유통하는 괴물들의 모습은 우리 인간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류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매번 목숨을 걸고 채집과 사냥을 나가야 하는 길고 고단한 구석기 시기를 지나며 마침내 채소와 고기를 직접 찾아다니지 않고 재배하고 기르는 법을 터득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배 가축은 발전을 거듭해고, 이제 현대인들은 더는 원시인들처럼 사냥과 채집을 나가지 않는다. 간편하게 고기를 파는 식당에 가거나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육류를 쇼핑한다. 그렇게 먹음직한 고기가 우리 입에 들어오기까지 가축에서 도축, 유통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오늘도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동물의 눈빛에 비치는 인간의 모습은 노먼과 엠마의 눈에 포착된 괴물의 형상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지만 애써 외면하며 오늘도 육질 좋은 고기를 씹을 것이다. 육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동물은 어차피 자력으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타 생명체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의존적인 생물이다. 그리고 인간 또한 어쩔 수 없는 동물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자연과 타 생명을 착취하는 건 인간뿐이다. 이것을 인간의 이성과 지능을 가진 인간만의 특수성으로 합리화해도 되는 건가,하는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무사히 현상을 빠져나와 고아원으로 돌아온 노먼과 엠마는 탈출을 결심한다. 레이까지 셋이서 탈출하자는 노먼의 말에 누구보다 착한 심성을 가진 엠마는 다른 아이들을 두고 갈 수 없다며 울먹인다. 흐느끼는 엠마의 뒷모습에 노먼은 다 같이 탈출하자고 한다. 그리고 문밖에서 이들의 대화를 엿듯는 레이. 다 함께 탈출하자는 이들의 생각은 옳을까.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아이들 모두는 고아원을 탈출할 수 있을까. 어떤 전략으로 끔찍한 하우스를 탈출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코니의 인형을 발견한 엄마의 일그러진 표정의 엔딩은 아이들이 탈출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