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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철학자습] <군주론>은 있지만 군주는 없다 /(feat.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

예로부터 한반도는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안으로는 왕위 쟁탈과 권력다툼이 그칠 날이 없었고 밖으로는 대륙과 왜국의 노략이 빈번했으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국명이 지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내몰릴 정도로 큰 전쟁에 시달렸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위로는 북한이 국방을 위협하고 중국은 북한과 합세하여 한국의 경제를 흔든다. 남으로는 일본이 호시탐탐 비열한 수로 정치 경제 분야에서 뒤통수를 갈긴다. 그뿐인가. 안으로는 지역갈등, 성별 갈등, 계층 갈등 그리고 부수와 진부, 좌파와 우파의 대립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러나 난세는 영웅을 만드는 법.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희대의 영웅이 나타나거나 백성들이 의병을 일으켜 내란과 외세에 맞서 싸우며 2020년 현재까지 대한민국 한민족의 역사를 지켜내고 있다.

 

수천 년간 우여곡절 심했던 한반도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다. 기원후 5세기 무렵까지 광활한 영토를 가졌던 이탈리아 반도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19세기까지 약 1400여 년 동안 수많은 도시 국가로 분열돼 춘추전국시대를 겪어야 했다. 안으로는 도시 국가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고, 밖에서는 프랑스와 스페인 등 열강들과 박 터지게 싸우느라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매일이 전쟁인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겐 승리가 별 의미가 없었다. 오늘 승리해봐야 끝날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했다. 오늘 지더라도 살아남아 내일 전쟁에 나가야 했다. 이러한 민족성은 현대의 축구에도 잘 나타난다. 아주 징글징글한 빗장수비에 온갖 비열한 반칙을 서슴지 않는 축구 스타일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키아벨리는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인 15세기, 그것도 이탈리아반도의 중심지이자 요충지였던 피렌체 공화국에서 태어났다. 당시 피렌체는 위로는 로마 교황국, 남으로는 나폴리 공화국, 밖에서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대대적인 침략으로 풍전등화였다. 이 어려운 시기에 마키아벨리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공직에 입신하여 약 18년 동안 공화정 체제 아래서 서기장을 지냈다. 공직을 수행하며 틈틈이 외교 사절로 신성 로마 제국 등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자신만의 정치적 지식과 견해를 구책해나가며 외교와 군사 방면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1512년 스페인이 침공하며 공화정이 무너지고 실권했던 메디치 가문은 군주제를 부활시켰다. 공화정에 기여했던 마키아벨리는 권력을 되찾은 메디치 가문에 의해 공직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국가반란 혐의로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재산도 압류당했다.

 

이 시기에 마키아 벨리는 그의 저작 <군주론>을 완성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나날 속에서 생활이 아닌 생존만을 위한 비정한 삶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나약함, 그리고 간사함을 보았던 것일까. <군주론>에는 인간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부정적 견해들이 가득하다.

"군주는 인간의 약함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위선적이고 탐욕스럽고 변덕스럽고 위험을 두려워하는 존재이다. 백성은 힘을 가진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지만 군주의 힘이 약해지면 바로 변절한다. 군주는 때로는 사자가 되고 때로는 여우가 되어야 한다. 겉과 속이 달라야 한다. 정의로운 얼굴에 교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필요시에는 악인이 되어 필요악을 행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두려운 대상을 해칠 때보다 사랑을 베푸는 대상을 해칠 때 덜 주저하기 때문이다. 신의, 신뢰를 필요 없다. 신의를 지키는 것이 상황을 불리하게 만든다면 신의를 지킬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켜서도 안 된다. 전쟁이나 외교에서 속임수는 기본이다. 이처럼 군주는 사자처럼 힘도 있어야 하고 여우처럼 간계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군주는 힘이 없으면 죽는다. 말로 하는 설득은 쉽지만 설득된 상태를 유지하는 건 어렵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힘으로 믿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힘이 없으면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고 결국 배신을 당할 수밖에 없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는 메디치 가문에게 자신의 책을 헌정해서 정계로 복귀하려는 야심이 담겨 있다. 하지만 당시 군주는 이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계 복귀의 꿈이 좌절된 것이다.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세상 일이란 운명의 여신의 뜻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머리를 쓴다 해도 이 세상 일의 진로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운명의 여신도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절반밖에 되지 않으며, 나머지 절반은 인간의 결단과 지혜로 통제될 수 있다."

운명의 여신의 농간으로 세상이 뒤집어졌지만 마키아벨리는 끝까지 희망을 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는 단지 희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결단과 지혜로 현실을 돌파하려고 했다. 그 결과물이 <군주론>인 것이다. 결과는 운명의 여신의 승리로 끝났지만 누가 마키아벨리의 패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군주론>은 이전의 정치철학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의 관점에서 이상적인 정치를 말해 왔고, 중세에는 종교적 관점에서 정치를 논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도덕과 종교로부터 정치를 완전히 분리했다. 기술적·공학적으로 정치를 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도덕적이라고 해서 그 나라가 더 도적적인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기 생각했다. 그에게 좋은 군주란 도덕적으로 선한 군주가 아니라 더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군주였다. 그러므로 더 큰 선, 즉 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행하는 군주의 '사소한 악'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때 목적은 반드시 '선'이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한정지었다.

 

<군주론>의 지침을 가장 따르는 정치가는 아베가 아닐까? 아베와 집권여당은 독도를 빼앗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치밀하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자국의 안보를 명분으로 2019년 한국에 기습적으로 경제보복 조치를 가했으며,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역시 한 마디 논의 없이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했다. 그뿐인가. 올림픽 개최를 위해 코로나 확진 검사를 하지 않음으로써 통계를 조작하고 방역에 소홀했다. 그러나 올림픽은 결국 내년으로 연기되었고, 연기 발표 직후부터 확진자 수가 급상승하고 있다. 경제 재건, 군사대국이라는 아베와 집권 여당의 명분은 선할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은 치졸하고 비열했다. 착한 학생처럼 <군주론>을 잘 따르고 있는데 왜 일본은 안팎으로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는 걸까.

 

목적이 선하다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의도 또한 선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유사 이래 독재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지도자와 정치가들이 대의나 공익을 명분으로 자신의 크고 작은 악을 합리화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자신의 사리사욕을 대의나 공익으로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독점적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고 목숨을 잃는 건 언제나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이는 멀리 갈 것 없이 우리나라 역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일본의 아베와 집권여당 또한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자국과 자국민의 이익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자신만의 이익에만 혈안일 뿐이다. 현실에 적용되지 않는 <군주론>의 한계는 결국 인간의 한계 때문이 아닐까. 마키아벨리가 언급했듯,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나약해서 위선적이고 탐욕스럽고 비열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