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의 편향성 문제
위의 그림은 토끼일까 오리일까. 정답은 둘 다 맞음이다. 오른쪽 방향으로 보면 토끼가 되고 왼쪽 방향으로 보면 오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위 그림은 오리 그림, 토끼 그림이 아니라 오리토끼 그림인 것이다. 하나의 현상을 편향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지적한 철학자가 바로 노우드 러셀 핸슨이다.
핸슨의 생애
노우드 러셀 핸슨은 1924년 뉴저지 주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에는 뉴옥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했을 만큼 음악에 열정과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1939년 9월 1일에 발발한 2차 세계대전은 한 청춘의 평범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미국이 참전한 전쟁을 수수방관할 수 없었던 애국 청년은 미약한 힘일지라도 전쟁에 보탬이 되기 위해 해안경비대에 입대한다. 이후 해병대로 옮겨 미 항공모함 USS프랭클린 제452 전투기 중대에서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 참전했다.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자 러셀은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왔지만 어쩐 일인지 다시 음악을 하지는 않고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수료했다. 이후에도 공부를 계속하여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복수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에서의 공부를 마치고는 미국으로 돌아와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과학사 및 과학 철학과를 설립해 교수로 재직했고 프린스턴 고등 과학원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전쟁 중에 전투기를 몰았던 핸슨은 일상에서도 개인 소유 비행기를 자주 몰았는데, 유례 없이 끔찍했던 세계대전에서도 생환했던 그였지만, 결국 평화로운 상공을 비행하다 추락 사고로 4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인간은 하나의 현상을 저마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태어난 환경과 자라난 배경, 그리고 주입된 교육 등에 인간은 영향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플라톤은 이 세계를 진짜 세계인 이데아의 그림자라고 주장하며 이데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계가 진짜이고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세에는 보편자가 있다는 측과 그런 건 없다는 측이 대립했으며, 근대에는 지식과 관념이 선척적이라는 입장인 합리론과 오직 경험으로만 참된 지식과 관념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경험론이 맞붙었다. 근대에 비하면 과학과 기술이 월등히 발달한 현대에도 창조론과 진화론은 여전한 논쟁거리다.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하나의 현상을 두고 반목과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현재 국내는 물론 전세계를 휩쓸며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코로나 사태를 두고도 한쪽은 정부와 관계기관의 노력을 좋게 평가하지만 다른 한쪽은 평가절하한다. 한쪽은 오리를, 다른 한쪽은 토끼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핸슨의 이론
이러한 편향성을 핸슨은 '관찰의 이론의존성'으로 정의하고 자산의 이론을 사회 일반 영역은 물론 과학으로까지 확대 적용한다. 사람들은 과학을 객관적 지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러셀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적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은 어떤 현상의 관찰에서 시작된다. 관찰을 통해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실험을 한다. 실험에서 가설에 부합하는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면 하나의 이론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러셀은 과학자가 가정한, 혹은 증명하고 싶어하는 이론이 관찰과 실험의 과정에 개입한다고 지적한다. 관찰과 실험의 결과는 과학자의 배경지식과 의도에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찰자는 현상을 관찰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현상을 관찰할 때 자신의 감각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관찰한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관찰자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관찰하는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
핸슨과 흄
핸슨의 주장은 근대의 극단적 경험론자인 데이비드 흄을 떠올린다. 흄은 합리론자들의 본유관념에 강하게 반대하며 지식은 오로지 인간의 경험을 통해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식의 생성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인상과 관념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인상은 관찰자가 자신의 감각체계로 받아들이는 대상의 속성이고, 관념은 머릿속에 남은 대상의 잔상이다. 간접·직접 경험을 통해 머리에 남은 잔상이 지식이라 흄의 주장은 관찰자가 관찰하는 대상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관찰자가 자신의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주관적 정보이며, 이것이 기존의 배경 지식과 맞물려 관찰의 대상을 왜곡한다는 러셀은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니까 하나의 현상을 두고도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과학자도 예외는 아니다, 과학자도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핸슨의 입장인 것이다.
핸슨을 꼰대들에게
핸슨은 이렇듯 지식과 과학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윤리적이다. 그의 이론을 받아들이면 인간은 누구나 주관적이며 그래서 상대적이고 그러므로 나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며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 그렇게 타인을 경청하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꼰대이면서 자신이 꼰대인 줄도 모르는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노우드 러셀 핸슨을 처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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