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의미의 '인샬라'는 신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과 운명을 신에게 내맡기는 수동적인 태도로도 읽힐 수 있다. 그래서 '인샬라'는 결정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결정론은 과거의 사건이 원인이 되어 미래의 일들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이다. 17세기 뉴턴을 결정론의 시작으로 본다. 결정론은 19세기에 이르러 라플라스에 이르러 정점을 찍는다. 하지만 20세기에 출현한 양자역학에 의해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뉴턴은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55미터 높이를 가진 피사의 사탑에서 돌맹이를 떨어뜨리면 3.35초 후에 지상에 떨어진다. 몇 번을 반복해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 항상 같은 값을 도출하기에 물리법칙이라 부를 수 있다. 이 물리법칙이 원인사건이 되어 3.35초라는 결과 사건을 미리 결정한다. 이것이 결정론이다. 이 결정론을 우주에 대입하면 우주 초기 상태가 전 미래를 결정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소우주라 불리는 인간 개개인의 정신도 제각각 주어진 두뇌에서 나온다고 볼 때, 인간의 정신활동 또한 미리 결정지어져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19세기 결정론자였던 라플라스는 1814년에 발행한 자신의 에세이 <대략적인 혹은 과학적인 결정론의 표현>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라플라스가 상상한 과거와 현재를 알고, 그 '앎'을 통해 미래를 유츄하는 상상의 존재를 '라플라스의 악마'라고 명명한 건 라플라스의 전기 작가들이다.
17세기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라이프니츠는 그 이전의 모든 시대가 신의 마음 속에 있는 것으로 여겨졌듯이, 모든 시대의 사건들을 볼 수 있는 과학자를 상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수학적으로 진행된다. (중략) 만약 누군가 사물의 내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상황을 이해하는 분석력과 모든 사건을 기억하는 기억력 모두를 가졌다면, 그가 바로 예언가이며, 거울을 보듯이 현재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라플라스의 에세이에 실린 결정론은 라이프니츠의 이 아이디어를 확장한 거였다.
결정론은 뉴턴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정작 뉴턴도 결정론을 확신하지 않았다. "하나의 추론에서 도출한 수학법칙을 적용해 다른 자연 현상을 추론하는 게 타당할까? 많은 현상 속에 미지의 원인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뉴턴은 썼던 것이다. 결정론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20세기 들어 양자역하의 등장으로 더욱 커졌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결정론과 양립이 불가능하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1927년에 발표한 법칙으로 특정 물체의 위치와 운동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론으로 결정론의 전제를 자체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음이 곧 결정론에 대한 부정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인식으로는 알 수 없지만 미래는 결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결정론이 문제가 되는 건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 미래가 결정되고 그 미래가 누군가의 현재라면, 현재의 생각과 행동 또한 누군가의 과거를 결정할 것이다. 즉 지금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면 결정된 미래는 다르게 결정될 것이다. 다시 말해 결정론은 오히려 인간의 자유의지를 긍정하며, 그러므로 라플라스의 악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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