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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철학자습] 에피쿠로스 힐링의 철학

에피쿠로스

먹을 게 없던 시절,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살아야 했다. 물질적으로 크게 부족함이 없는 요즘,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그런데 행복은 무엇일까. 아마도 결핍이 없는 상태가 아닐까. 하지만 인간의 욕심과 욕망엔 끝이 없다. 남의 손에 들린 떡이 커 보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오는 게 인지상정이다. 잠깐의 만족은 가능할 테지만, 완전한 행복이란 건 어쩌면 허상이 아닐까. 그 허상을 잡아보겠다고 우리는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2300여 년 전 비슷한 고민을 한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에피쿠로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이다. 당시 대부분의 철학자들에게 철학은 만물의 근원을 연구하고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의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사는 데 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힐링의 철학에 다름 아니다.

 

지중해 주변의 나라들은 대다수 인구 만 명 전후의 군소국가였다고 한다. 가장 큰 도시였던 아테네도 시민 수가 1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그런데 BC 4세기경 알렉산데 왕이 아프리카,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하고 전역에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는 대 도시들을 만들었다. 유례없는 도시화가 진행된 것이다. 제국으로 흡수된 영토 각지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부와 성공의 기회를 잡기 위해 도시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도시들은 폭발적으로 유입되는 인구를 모두 수용할 수 없었다. 물가가 오르고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도시 난민이 늘어나다 보니 인심도 삭막해졌다. 사람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직 고독을 느끼기 시작했다. 군중 속의 고독이었다. 이러한 시대 배경을 바탕으로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에피쿠로스는 인도의 '오로빌' 같은 대안 공동체를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다. 이들이 원하는 건 행복, 힐링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감정을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괴로움, 쾌락과 고통 등의 이분법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철학은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 즉 선(good)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선, 행복에 닿을 수 있을까. 간단했다. 선의 반대급부를 없애는 것.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다.

             

            가지고 있는 것

행복 = 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가지고 싶은 것

 

에피쿠로스의 공식 대로라면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가지고 싶은 것이 더 많은 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다. 반면 가진 것이 거의 없어도 이미 가진 것에 만족할 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없는 자의 자기합리화 내지는 정신승리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한 부자들이나 돈 때문에 비극에 빠지는 부유층을 흔히 볼 수 있는 걸 보면 틀린 공식이라고만 할 순 없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물과 빵만 있으면 나는 신도 부럽지 않다." 실제로 그는 물과 빵만을 먹었다 한다. 치즈가 있어도 가끔씩만 먹으면서 맛을 음미했다고. 무소유나 미니멀리즘 혹은 소확행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불행이나 고통이 없다고 인간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매슬로우의 욕구단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의 욕구가 해결되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상위 욕구를 욕망한다고 한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매슬로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세상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조각, 즉 원자들이 떠다니는 공간으로 본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받아들여, 인간 또한 원자들의 이합집산으로 여겼다. 우연히 모였다 흩어지는 것을 인생이라 보았다. 그러므로 그에게 목적, 의미, 존재의 본질이나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행복해지는 것만이 전부였다. 행복해지기 위한 방법이 그에겐 '정원'이었다. 정원공동체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이 그에겐 행복의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행복론은 우연하게도 하버드에서 75년간 지속되고 있는 한 연구와 궤를 같이 한다. 이 연구진들은 1938년부터 700여 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그들의 인생을 추적하고 있다. 연구진들은 해마다 이들을 인터뷰하고 건강검진을 하고 자녀와 대화하는 모습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겨왔다. 75년 동안 축적된 기록은 무엇을 말할까. 바로 행복한 삶을 만드는 건 부가 아니라 '좋은 관계'라는 거였다. 이 연구의 네 번째 총책임자가 된 로버트 윌링거는 말한다. "젊은 시절엔 부와 명성, 그리고 높은 성취를 추구해야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 역시 우리에게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라고 말하죠. 하지만 75년 동안 700여 명의 인생을 추적해온 결과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좋은 관계"였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철학과 실천을 통해 물질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욕망의 유혹을 넘어서고자 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도 초연하고자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는 죽을 수 없다. 우리가 죽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히 에피쿠로스는 쾌락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무분별한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가 진실로 원했던 것은 고통의 부재, 신의 처벌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 자유와 내적 평온이었다. 그의 사상이 쾌락주의보다는 힐링의 철학에 가까운 이유다.

 

그는 실제로 모든 고통을 초월하고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살았을까? 그건 본인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무려 2300여 년 전에 이미 그는 부와 성공만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삶의 소용돌이에서 비껴 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고 그런 삶을 실천했다는 점이다. 풍요 속의 빈곤, 군중 속의 고독이 가득한 우리가 사는 요즘, 자유롭게 모여 행복한 한담을 나눌 수 있는 에피쿠로스의 정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