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창고

[철학자습] 플라톤 동굴의 비유

플라톤 동굴의 비유

2500년의 역사를 가진 서양철학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있다. 이 중에서 사상의 체계를 세운 철학자로 5명을 꼽을 수 있다. 고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 근대에 칸트와 헤겔. 플라톤과 칸트는 순수주의자이면서 이상주의자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플라톤과 칸트는 현실세계 말고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은 현실세계와 다른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말하고, 칸트는 사실의 세계와 다른 당위의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두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저서 [국가] 제 7권에서 동굴의 비유를 제시한다.

 

동굴의 비유는 플라톤의 [국가]에서 왜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해 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세 가지 비유 중 하나이다. 동굴의 비유는 4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는 동굴 안에 있는 속박된 사람들의 상황이다. 이들은 동굴에서 태어나 동굴밖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들은 의자에 묶여 벽면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 뒤에는 담장이 있고, 담장 위로 인공물들이 오가며, 담장과 입구 사이에 불빛이 있어 그것들을 비춘다. 불빛과 인공들들은 각각 태양과 실제 사물의 모방이다. 이 인공물들의 그림자는 의자에 묶인 사람들이 강제로 바라보고 있는 동굴 벽면에 왜곡돼어 비친다. 태어나면서도 그 벽면만 바라본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동굴 벽면의 그림자를 진짜라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들에게 눈에 보이는 동굴벽면은 당연한 현실이고 일상이다.

 

2단계는 이 동굴 주민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풀려나면서 시작된다. 그는 어떤 힘에 이끌려 벽면만을 바라보던 시선을 뒤로 돌려 불빛을 바라본다. 의자에서 풀려난 그는 불빛에 이끌려 담장에 올라 인공 불빛을 마주하는데, 강렬한 불빛에 고통스러워하며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한다.

 

3단계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그를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손에 이끌려 그는 동굴 밖 햇빛이 쏟아지는 세상으로 끌려나온다. 동굴 불빛에도 고통스러워했던 그는 강한 햇빛에 다시 한 번 눈이 타는 듯한 고퉁을 겪는다. 세상 밖으로 나왔으나 광채로 가득 차서 진실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볼 수 없었다. 밤이 되어서야 그는 눈을 편히 뜰 수 있었고 세상의 진실을 볼 수 있었다. 달, 별, 하늘, 구름, 지상, 나무, 생물들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다. 그러다 날이 밝았고 신새벽의 태양을 목도한다. 태양을 관찰하면서 태양이 가시적인 세계 안의 모든 것들을 관장할 뿐 아니라 동굴 안에서 보아온 모든 것들이 원인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4단계는 세상의 진실을 알게된 그가 동굴에 사는 동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시 동굴로 돌아가는 길은 동굴을 나올 때와 똑같은 고통이 수반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건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가 "너희들이 보고 있는 건 가짜야. 진짜는 동굴 바깥에 있어."하고 말해도, 태어나면서부터 이제까지 동굴 벽면만 보고 그걸 진짜라고 믿어온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 오히려 그가 자신들에게 거짓을 말하고 선동한다며 그를 공격하고 심지어 죽이려 든다.

 

동굴의 비유는 가짜 세계와 진짜 세계를 보여준다.

동굴 안

동굴 밖

가짜 세계

진짜 세계

현실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

가시계 (Visible)

가지계 (Intellligible)

동굴의 비유로 플라톤이 내세우는 주장은 감각으로 경험하는 현실 세계는 가짜 세계이고 이성으로 인지하는 이데아의 세계가 진짜 세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감각이 거짓이라면 이성 또한 거짓은 아닐까. 그리고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를 보았을까. 설령 그의 이성으로 세계의 진실을 꿰뚫어보았다 한들 그 세계 또한 또 하나의 거짓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가량 동굴보다 더 큰 동굴을 우리는 세상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거다. 백 번 양보해서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바둥거려야 하는 현실엔 변함이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