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식창고

[철학자습] 고르기아스의 회의주의

고르기아스

회의주의에는 크게 종교적 회의주의, 과학적 회의주의, 철학적 회의주의 이렇게 세 분류가 있습니다. 종교적 회의주의는 특정 신이나 특정 종료를 믿지 않는 입장, 과학적 회의주의는 초능력, 심령술, 미신 등 의사 과학이나 유사 과학을 믿지 않는 입장을 말합니다. 철학적 회의주의는 앞의 두 회의주의와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철학적 회의주의는 이건 믿고 저건 믿지 않는 식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믿지 않는 입장입니다.

 

고대의 대표적 철학적 회의론자는 피론,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등 세 명입니다. 피론은 "어떤 것이 확실한 진리인지 알 수 없으니 진리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입장을 '피론주의'라고 합니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면서 "절대적인 진리, 절대적인 도덕과 같은 것은 없으며 세상의 모든 진리와 모든 도덕은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고 주장했습니다. 고르기아스는 "세상에 진리 따위는 없으며 설령 진리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2500여 년 전 철학자자이자 수사학자인 고르기아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면 그는 자신의 책 "비존재에 관하여(On what is not)"에서 세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설령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셋째, 설령 그것을 알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전달할 수 없다. 첫째는 고르기아스의 존재론, 둘째는 인식론, 셋째는 언어론에 해당합니다.

 

세 명제에 대한 각각의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명제 1.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논증 A.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B.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C. 그러므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명제 2. 설령 어떤 것이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논증 A. 우리는 비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B. 비존재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C. 생각과 존재하는 어떤 것은 무관한다. D.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생각되는 것은 아니다. E.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하는 어떤 것을 알 수 없다. 다시 말해 존재와 생각은 일치하지 않는다. 

 

명제 3. 설령 어떤 것을 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전달할 수 없다.

논증 A. 우리는 로고스(언어)를 통해서 무언가를 전달한다 B. 이때 전달하는 것은 이야기하는 대상이 아니라 로고스이다. C. 로고스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D. 우리는 존재하는 어떤 것을 전달할 수 없다. 즉, 생각과 언어는 일치하지 않는다.

 

고르기아스 회의론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와 생각은 일치하지 않으므로 진리가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생각과 언어는 알치하지 않으므로 진리를 알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달되지 않는다." 고르기아스의 이런 결론을 극단적 회의론이라고 하고 고르기아스를 극단적 회의론자라 합니다.

 

그런데 회의론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회의주의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라는 점입니다. 그 모순이란, 고르기아스의 회의론이 진리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진리는 없다'는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회의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진리를 회의했으면서도 철학자가 된 고르기아스의 존재 자체도 모순이랄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