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평범하게 태어났다. 어쩌면 평범 이하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얼굴 천재라는 말도 있는데, 외모 면에서는 나는 확실한 범재다. 지적 능력도 천재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이런 나는 종종 어떤 특수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되는 상상을 하거나 갑작스러운 사고에 서번트 증후군이 생겨 비상한 천재가 되는 공상을 한다. 하지만 내 인생 자체도 너무나 평범, 혹은 그 이하라서 그런 영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하다. 평범하게 사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라는데, 나는 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는 게 이리도 힘든가?
지독히 평범한 나와는 다르게 동시대를 풍미한 두 명의 천재가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이들은 한 분야에서의 천재가 아니라, 전방위적 천재였다. 철학, 수학, 과학, 논리학 등등에서 인류 역사에 남을 만한 천재력을 발휘했다. 한 시대는 하나의 왕만을 원한다 했던가. 동시대에 태어난 두 천재는 숙명의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미분을 발견했다. "어떤 함수의 정의역 속 각 점에서 함수값의 변화량과 독립 변수값의 변화량 비의 극한 혹은 극한들로 치역이 구성되는 새로운 함수가 미분이다"는 설명을 들어도 둔재인 나는 정의를 이해하는 일도 버거운데, 이들은 이런 걸 발견했다고 하니 확실히 천재이긴 천재인가 보다.
고독하고 불운한 짧은 삶을 사다가 요절하는 천재들이 많다지만 의학과 기술의 발달하지 못했던 근세에 뉴턴은 무려 84세까지 장수했고 라이프니츠도 칠순까지 천수를 누렸으며, 각각 영국의 왕립학회장과 독일의 과학 아케데미 원장까지 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출세를 이뤘다. 이들은 당시 양 국가의 지성이어서 이들의 자존심 싸움은 곧 국가의 자존심 대결로 번지곤 했다. 이른바 미분전쟁이었다. 이들의 대결은 미분을 넘어 시간과 공간 이론에서도 부딪혔다.
뉴턴은 우주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시간과 공간은 남는다고 주장했다. 시간과 공간을 우주를 담는 그릇의 개념으로 보고, 밥그릇의 밥을 게 눈 감추듯 비워도 빈 밥그릇은 남듯이 시간과 공간은 물질과 상관 없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뉴턴의 시공간 이론을 '절대주의'라고 한다. 모든 이론엔 반론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뉴턴의 '절대주의'에도 의문이 제기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시간과 공간은 언제 생겼냐는 의문이었다. 이들이 살았던 근세는 아직 기독교 사상의 영양력 아래에 있었다. 그래서 뉴턴은 이 의문에 대해 시간과 공간은 신의 감각기관이어서 천지창조 이전에도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의견을 반대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무엇이 아니라 물체와 물체 사이의 관계로 정의했다. 그래서 우주의 모든 물질이 사라지면 시간과 공간도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이 입장이 '관계주의'이다. 라이프니츠의 이론대로라면 시간은 공간은 신의 감각기관이라는 뉴턴의 가설을 부정하게 되고, 또한 신이 시간과 공간을 창조할 필요성도 사라진다. 신에 의해 물질이 만들어지면 시간과 공간은 자연발생한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의 관계주의를 받아들이면 우주밖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질문은 모순이 된다. 물질을 감싸고 있는 공간이라는 '우주'의 개념자체가 우주 바깥에는 아무 물질이 없는 사태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이 우주를 언제 창조했는가 하는 질문도 성립하지 않게 된다. 신우 우주를 창조하기 전에는 물질이 없었다. 물질이 없으면 시공간도 없다. 시공간이 없었으므로 '언제'라고 시점을 특정할 수 없는 것이다.
절대주의가 맞을까, 관계주의가 맞을까. 아니 그 이전에 신은 존재할까? 인류는 아직도 두 천재가 낸 문제를 풀고 있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라이벌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우주적 주제를 연구를 할 주제가 안 되는 나는 나의 시간과 공간이 다 할 때까지 느긋하게 팝콘을 먹으로 구경하면 될 듯하다. 이것이 평범한 둔재의 소소한 행복이 아니겠는가.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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