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습] 인류 최초의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 상대주의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더욱 더 말을 잘해야 성공할 수 있었다. 언변이 좋아야 정치적으로 출세할 수 있음은 물론,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일상에서 논리적인 화술은 자신을 지키는 방패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화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필연적으로 이들에게 돈을 받고 웅변술이나 수사학, 논쟁에서 이기는 법, 그리고 법률에 관한 지식 등을 가르쳐주는 지식인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소피스트라 불렀다. 사실인지 알 순 없지만, 프로타고라스는 인류 역사상 돈을 받고 지식을 가르쳐준 최초의 소피스트라고 전해진다.
그리스 철학은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의 철학자들은 자연세계를 탐구한 반면 이후에는 주로 인간세계를 탐구했다. 관찰대상을 자연세계에서 인간세계로 끌어내린 주역이 소피스트이며 이들의 시초가 바로 프로타고라스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다. 해서 소크라테스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와 선/악 등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절대적인 진리를 찾는 여정이었다. 반면 프로타고라스는 진리와 선/악 등을 상대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자신이 만물의 척도다". 즉 어떤 절대 진리나 선이 절대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가령 나에게 맛있는 어떤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별로일 수 있듯이.
이런 상대주의적인 성향 때문일까. 프로타고라스는 이중 논변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중 논변이란 하나의 사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 모두의 입장을 가지는 것이다. 프로타고스에겐 옳고 그름, 선악의 분명한 구별이나 가치관이 없었다. 어느 쪽이든 자신에게 지불하는 쪽이 자기 편이었다. 지식용병, 이보다 그를 잘 설명하는 용어는 없을 듯하다. 어쩌면 프로타고라스에도 도덕이나 윤리의식이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생계를 위해 자신의 지식을 팔아야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을 평가하는 건 그의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다. 천박한 지식 장삿꾼이라는 플라톤의 평가에 프로타고라스도 크게 이의를 제기하진 못할 듯하다.
프로타고라스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소피스트들이 상대주의자였는데, 이는 사실 자기모순이다. 만약 세상에 절대 선이나 진리가 없다면 옳고 그름이 무의미해질 것이며 지식의 우열도 사라질 것이다. 그런 세상에선 진리를 탐구할 필요가 없으므로 철학자는 물론 소피스트의 존재 이유도 소멸한다. 모든 건 상대적이라 말하면서도 선과 악, 옳고 그름 어느 한 쪽을 변호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소피스트는 자기모순적인 존재들인 것이다. 이러한 상대주의는 현상이나 사물과 언어의 일치를 중요하시하는 소피스트들의 학설과도 대립했다. 엘레아 학파부터 이어진 소피스트의 교설에 따르는 사물이나 현상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있어 거짓이나 부정은 인정되지 않았다. 세계를 정확히 담아내야 비로소 언어가 유의미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대주의를 따르면 절대적인 것은 없으므로 사물과 현상을 얼마든지 비슷한 말들로 옮겨도 무방하다. 언어를 비롯해 세상을 대하는 그들의 교리와 상대주의 사이에 괴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프로토고라스는 이런 지적을 상대주의로 관철한다. 언어와 이성 모두를 포함하는 로고스에도 강한 로고스와 약한 로고스, 좋은 로고스와 이로운 로고스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완전히 틀린 로고스는 없지만 더 효율적이고 이로운 로고스는 있으며 이러한 균형에 따라 로고스의 강약이 정해진다고 했다. 자신의 이중논변의 목적이 바로 강한 로고스를 만들어 약한 로고스를 꺽는 것이라고. 좋은 강한 로고스로 약한 로고스를, 이로운 로고스로 해로운 로고스를 이기는 경험을 통해 좋은 로고스를 완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 좋은 로고스란 자연적이고 건강한 상태의 것이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그의 주장 역시, 좋은 로고스를 설정하는 지점에서 이미 자기모순이 아닐까.
어쩌면 프로토고라스의 상대주의는 자신의 무도덕과 무윤리를 변호하기 위한 수단이자 절대주의의 창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방패가 아닐까. 절대주의냐 상대주의냐, 이건 선악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믿음의 문제인 듯싶다. 그런 면에서 모든 주의는 자신에게 절대주의고 타인에게는 상대주의가 아닐까. 상대주의조차 상대주의자에게는 그것이 절대주의가 되고, 절대주의조차 타인에게는 한낱 상대주의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또 그렇게 서로의 가치관과 사상을 존중해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