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습] 소크라테스 산파술
소크라테스는 예수, 석가모니,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에 드는 인물이다. 어떤 기준으로 4대 성인을 뽑은 건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예수는 전세계 인류의 영적 영역 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며, 석가모니 또한 불교를 창시해 동양의 역사와 문화 철학 과학 전반에 현재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공자는 유교라는 학문을 창시하여 동아시아 전반의 역사와 문화 정치 정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크라테스는 서양철학과 사상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소크라테스는 가난했다. 그의 가난은 자발적 가난이었다. 그는 노동보다 사유를 사랑했고 사유할 시간을 위해 노동을 멀리했다. 그런 삶이 철학자의 삶에 맞는다가 생각했다. 가난한데 일도 하지 않는 남편을 마냥 예쁘게 보아 줄 아내가 어디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성인일 줄 몰라도 아내는 보통 사람이었다. 하여 소크라테스와 그의 아내 크산티페 사이에는 부부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한다. 하여 악처라는 평가가 현재까지 내려오지만 페미니즘이 보편화된 요즘이었다면 이 평가는 뒤집혔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시대에는 소피스트라는 집단이 있었다. 소피스트는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경 그리스 아테네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지식집단이다. 지식집단이라고는 하나 통일된 사상을 공유한 것은 아니고 각자 저마다의 사상을 주장하는 식이었다. 이들이 모두 정연한 논리를 앞세운 건 아니었다. 말싸움에서 무조건 이기고보려는 강변가들이나 논리박약의 주장을 내세우는 궤변가들도 있었다. 문제는 이들의 궤변에 대중들이 현혹되는 거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고향인 아테네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철학자였다. 그런 아테네가 소피스트들의 궤변에 놀아나고 상대주의나 양비론에 빠지는 모습을 보며, 이에 반발하여 보편적 지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다.
소크라테스가 사용한 토론의 기술은 산파술이었다. 산파술은 산모가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도록 산파가 옆에서 도와주는 기술을 말하는데, 소크라테스의 화법이 이와 같았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대신 상대방에게 단계적인 질문을 하여 그의 무지 혹은 이미 알고 있는 '앎'을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타인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잊어버린 지식을 떠올리게 도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를 가르치는 댓가로 돈을 받은 적이 없다. 어느 날 매논은 그의 산파술에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어떻게 우리가 배우지도 않은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지?" 매논의 질문에 소크라테스는 기하학을 배운 적이 없는 소년에게 사각형을 그리며 이런 저런 질문을 유도했고 노예 소년은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답을 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산파술이다. 소크라테스는 노예 소년에게 가히학적 지식을 가르쳤다고 여기지 않았다. 소년은 이미 기하학적 지식을 알고 있었고 자신은 그저 그걸 상기시켜주었다고 믿은 것이다. 그래서 산파술을 상기술이라고도 한다.
산파술이 유도심문과 비슷해보이지만 엄연히 달랐다. 유도심문이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원하는 대답을 유도하는 심문 방법이라면 산파술은 자신이 상대보다 더 무지함을 전제하고, 기본적인 개념부터 검토해 나아가는 태도이다. 이러한 산파술은 진리와 지식을 대하는 소크라테스의 겸손한 태도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산파술은 자주 공분을 샀다. 누군가와의 토론에서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그에 대한 논거를 제시하는 게 아니라 나의 논리적 빈틈만을 노리고 공격해온다면 기분 좋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의 산파술은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분명 확고한 주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와 토론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려 당황하거나 화를 내거나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로 인해 맞닥뜨리는 논리적 길없음을 '아포리아'라고 한다.
오랜 시간 산파술로 사람들과 토론한 끝에 소크라테스는 자기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로 아는 사람은 없다는 걸 깨닫고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걸 안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서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다"고 한 공자의 말과 궤를 같이 한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앎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