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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습] 베이컨의 네 우상

샨티류 2020. 3. 22. 17:15

프란시스 베이컨

16, 17세기를 과학혁명의 시기라고 한다.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유렵의 세계관의 변화가 일어났다.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근대의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옮겨가게 가는 과학혁명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이 있다. 누가 언제 처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베이컨은 이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학문에 굉장한 열정을 지니기도 했지만, 당대 대학의 구시대적 학문을 비판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고 한다. 베이컨은 신기관(Novum Organon)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의 제목은 아리스토 텔레스의 논리학(Organon)에서 비롯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논리학을 제시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제목이다.

베이컨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 낡은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것. 두 번째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으로 귀납법을 표준 방법론으로 채택하자는 것. 그렇다면 어떻게 낡은 편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종교적이고 현학적인 데다가 권위주의와 신비주의는 물론 미신적이기까지 한 중세 학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베이컨은 중세 학문과 단절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우상이란, 올바른 지식을 얻는데 방해가 되는 편견과 선입견을 의미한다. 베이컨은 우상을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극장의 우상, 시장의 우상 네 가지로 분류했다.

종족의 우상은 특정 종으로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연히 생겨나는 관점이자 편견이다. 인간의 행동에는 목적의식이 있다. 먹는 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함이고, 자는 건 피로를 줄이기 위함이며, 일을 하는 건 돈을 모으기 위함이다. 이처럼 인간의 행동은 의식·무의식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해 일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개미와 같은 곤충도 어떤 목적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어떤 작은 사건도 신의 계획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믿는다. 이런 편견을 베이컨은 종종의 우상으로 보았다.

종족의 우상이 집단적 편견을 의미한다면 동굴의 우상은 개인적 편견을 가리킨다.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완벽힌 객관적인 입장은 없다. 사람은 태어난 배경, 자라온 환경, 주입된 교육과 습관 등으로 이루어진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어느 정도 편파적인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편견과 선입견의 동굴 속에 살기에 자신과 다른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며,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사람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오롯이 이해할 수 없다. 같은 경험도 다른 사람이 겪으면 다른 경험이 된다. 게다가 나는 타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한 것이다.

시장의 우상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우상을 일컫는다. 인간은 어떤 개념을 자주 듣거나 말하면 마치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은연중에 어떤 개념에 대응하는 실재가 존재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히어로 무비를 자주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는 저런 초능력자가 있진 않을까 하고 믿게 되는 것처럼. 이와 같은 오류를 논리학에서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라고 한다. 가령 누군가 "북극곰은 펭귄을 잡아먹고 산대."라고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면 북극곰이 남극에 존재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게 되는 오류이다. 북극곰은 북극에 살고 펭귄은 남극에 살기 때문에 북극곰은 펭귄을 잡아먹을 수 없다. 가상의 개념을 자꾸 듣거나 말함으로써 그것들을 실제로 믿는 것이 시장의 우상이다.

극장의 우상은 전통,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으로 발생하는 우상이다. 내가 어떤 주장을 하는데 상대방이 믿어주지 않을 때 티비에 나왔다, 뉴스에 나왔더라고 하면 일단 50퍼센트는 먹고 들어간다. 사람들은 미디어의 공신력을 은연중에 믿는 것이다. 일전에 조국 사태가 불거졌을 때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 퇴진 서명운동을 했던 적이 있다. 그걸 본 주변의 어른들이 "아니, 서울대에 다니는 똑똑한 학생들이 저렇게 시위할 정도면 뭔 죄를 지어도 지은 거 아니겠어?"라고 말하곤 하는 걸 자주 들어야 했다. 서울대 다니는 학생들이 똑똑할 순 있지만 그들이라고 모든 일에 옳은 사고와 행동을 하는 건 아닌 데도, '서울대'라는 배경이 가진 전통과 권위에 맹목적으로 믿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를 극장의 우상이라 한다.

예의 우상들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자신만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경험하며 살아갈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이 알고 있고 경험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생각이 지극히 주관적이며, 그러므로 타인에겐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아닐까.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타인의 입장에서 헤아린다면 조금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세상은 오래전에 이미 파라다이스가 되어 있었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