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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습] 세상은 변화할까, 그대로일까

샨티류 2020. 3. 8. 18:31

헤라클레이토스 사진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만물이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는 철학에서 오래된 논쟁입니다. 만물이 변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고대 철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입니다. 대다수 고대인들이 그렇듯 헤라클레이토스의 생몰연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대체적 생애는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고대 그리스 최대의 무역 도시 에페소스에서 귀족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사람은 나고 자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는 생물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도 끊임없이 물자와 인구가 이동하는 에페소스의 환경에 영향을 받아 "만물은 흐른다(Panta rei)"는 사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그이 Panta rei 사상이 함축된 명제입니다. 그는 자연의 기본적인 특성을 변화로 보았습니다. 모든 것은 운동 가까이에 있으며 어떤 것도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두 번째 발을 담갔을 때는 이미 이전과 같은 물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한 변화는 대립을 전제로 합니다. 빛과 어둠, 선과 악, 차가운과 뜨거움, 강함과 통일된 세계를 형성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타오르는 불로 보았습니다. "세계는 불타오르기도 하고 꺼져가기도 하는 영원히 살아 있는 불이다"며 움직이지 않는 불이란 생각할 수 없듯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파르메니데스 사진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만물은 변한다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에 정반대되는 주장을 설파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파르메니데스입니다. 그는 엘라아(지금의 이탈리아 벨리아)사람입니다. 엘라아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살았던 에페소스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변두리였습니다. 현재도 한적한 시골 마을에 불과한 엘라아는 당시에도 인구 천 명이 안 되는 소도시였다고 합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독특한 철한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명제가 그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그냥 당연한 말 같지만 뒤에 나오는 말이 중요합니다. "없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인간은 없는 것을 상상하고 창조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며 상상은 이미 존재하는 무엇에서 착상된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건 생각해낼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꾸는 꿈조차 현실에서 접한 무수한 파편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있는 것"뿐입니다. 파르메니데스의 명제가 옳다면 세상에 있는 건 한 개뿐입니다. 여러 개가 존재하려면 개체와 개체 사이에 빈틈(허공)이 있어야 하는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없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에게 세상엔 하나의 있는 것, 즉 '일자 존재'만이 존재합니다. 그의 일자론에는 빈틈의 부재라는 맥락에서 운동도 변화도 없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논증은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낳았습니다.

 

만물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의 논쟁은 현대에 들어 좀더 복잡해진 양상입니다. 이동지속이론(개별자는 시간을 뚫고 변화를 겪으면서 존재한다), 확장지속이론(개별자는 시간에 걸쳐서 존재한다), 그리고 찰나지속이론(모든 찰나에서의 개별자는 전부 다른 존재이다) 등 사유가 복잡해졌습니다. 하지만 만물이 변하냐 변하지 않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싶기도 합니다. 변하든 불변하든 우리가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필요한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들이 철학자고 철학자가 있어서 생계를 위한 단순 건조한 삶이 풍성해지는 듯도 합니다. 아마도 철학이라는 분야가 고대에서 현대까지 사라지지 않고 맥을 계속 이어오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